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리스 데이 (문단 편집) == 사생활 == 대중 이미지와 달리 남자 관계는 복잡한 편이었다. 첫 번째 남편인 앨 조든[* Al Jorden. 1917 - 1967.]은 23살 때 16살이었던 데이에게 반했다. 어머니는 다 큰 성인이 미성년자를 스토킹하는 상황을 소름 끼쳐하며 데이에게 주의를 줬지만 데이는 끈질긴 조든에게 끝내 넘어갔다. 교제 시절부터 둘 다 각자 다른 이성들과 바람피웠지만 데이는 청혼을 승낙했다. 1941년 결혼 당시 데이는 17살이었다. 조든은 결혼 생활 내내 데이를 "더러운 창녀"라고 욕하며 구타하는 일이 잦았다. 데이의 수영복 화보를 발견하고 팬들이 보는 앞에서 데이의 뺨을 때린 적도 있다. 데이는 조든과의 사이에서 테리 멜처[* 후에 새아버지가 되는 데이의 세 번째 남편 마튼 멜처가 입양하면서 성이 멜처가 되었다.]를 낳았다. 데이의 유일한 임신이었는데 이 소식을 알리자마자 아이를 전혀 원치 않았던 조든은 불법 [[낙태]]를 종용하며 데이를 폭행했다. 부푼 배에 총구를 겨누고 동반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다. 결국 데이는 이혼을 선언했다. 훗날 조든은 머리에 총을 쏴 자살했는데 이 소식을 듣고도 데이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두 번째 남편 조지 와이들러[* George Weidler. 1926 - 1989.]는 [[색소폰]] 연주자였다. 와이들러는 가부장적 사고를 지녀 결혼 내내 은퇴를 강요했으며, 친아들이 아닌 테리 멜처를 좋아하지 않았다. 와이들러는 몇 여성들과 외도했으며, 데이도 여러 남배우들과 한꺼번에 불륜 관계를 맺었다. 데이는 유부남 스티브 카크런[* 카크런 역시 [[조운 크로퍼드]]와도 만나고 있었다.], 유부남 잭 카슨 모두와 불륜하던 시기에 매니저 앨 리바이와도 잠자리를 가졌다. 어느 날 데이가 리바이에게 연예인-매니저 관계로 돌아가고 싶다고 통보하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리바이는 데이를 스토킹하다가 혼자 있던 데이를 따라 호텔 방으로 들어와 [[강간]]을 시도했다. 데이는 리바이의 사업 파트너 마튼 멜처[* Martin Melcher. 1915 - 1968.]에게 이 사실을 알렸는데, 멜처는 데이가 리바이를 기소하는 일을 막기 위해 리바이의 사무소를 뉴욕으로 옮겨버렸다. 그런데 이 인연으로 데이는 [[앤드루스 시스터즈]]의 멤버인 패티 앤드루스와 결혼 생활 중이었던 유부남 멜처와도 혼외정사를 갖기 시작했다. 여기에 [[로널드 레이건]]이 추가되면서 데이는 동시에 네 명과 불륜 관계가 되었는데 이외에도 단역 수준의 배우들 몇을 동시에 더 만났다. 이와중에 와이들러는 아내 데이에게 [[크리스천 사이언스]]를 소개했는데, 모든 의료 행위에 반대하고 금욕과 모범적 삶을 강요하는 종교였다. 신도가 된 데이는 이를 다시 불륜 상대 멜처에게 전파했다. 이후 신도들은 때때로 영화 출연에도 개입했고, <사랑하거나 떠나거나>에서 술집여자 역을 맡았을 때 데이를 매우 비판했다. 아직 결혼 생활 중이었던 멜처가 청혼하자 데이는 다른 남자들을 정리하겠다고 약속하고 와이들러와 이혼에 들어갔다. 멜처의 불륜이 언론에 보도되자 앤드루스도 이혼을 신청했다. 세 번째 남편이 된 마튼 멜처는 데이가 가장 길게 결혼 생활을 한 남편이었다. 데이는 멜처에게 크게 의지했지만 멜처는 데이의 재산을 탕진하였으며 데이의 의지와 상관없이 영화에 출연시켰다. [[커크 더글러스]]가 결혼 전에 돈과 관련해 멜처를 경계하라고 데이에게 이미 주의를 줬다는 얘기가 있다. 멜처는 영화 <[[졸업(영화)|졸업]]>(1967)의 로빈슨 부인 역할 제의가 들어왔을 때 데이와 상의도 하지 않고 아들뻘과 성교를 하는 연기는 천박하다고 일방적으로 거절했다. 그러나 멜처의 선택들은 결과적으로는 데이에게 경력상 큰 성공들을 안겨주었다. 아들 테리 멜처는 데이가 마튼 멜처와 살 때 늘 멍이 생겼고 전형적인 [[우울증]]과 [[양극성장애]] 증세를 나타냈다고 증언했다. [[록 허드슨]]도 마튼 멜처가 데이를 [[폭행]]했다고 했다. 멜처는 데이와 연기하는 남배우들을 질투했는데, 특히 <줄리>에서 남자 상대역이었으며 절친이 된 [[루이 주르당]]과 [[불륜]]한다고 의심해 촬영 내내 데이의 모든 생활을 통제했다. 심지어 [[크리스천 사이언스]]를 명분 삼아 데이의 [[난소암]] 치료를 거부해 병을 크게 키웠다. 데이가 쓰러질 때까지 병원에 못 가게 막았는데, 정작 데이 본인의 신앙심은 깊은 편이 아니였다. 데이는 <줄리>(1956)를 찍던 중 [[자궁]]을 적출하였다. 마튼 멜처는 자기 핏줄이 아닌 아들 테리 멜처에게도 심한 정신적 신체적 폭력을 휘둘렀다. 데이는 60년대 초반 이혼을 요구했지만 멜처가 극구 거절했다. 1968년 멜처가 사망한 후 데이는 [[크리스천 사이언스]]를 버리고 [[정신질환]]과 수술 [[후유증]]을 제대로 치료하기 시작한다. 멜처의 파트너인 저로움 버너드 로즌솔[* Jerome Bernard Rosenthal. 1911 - 2007]이 멜처의 재산을 사기 친 것을 알게 된 데이는 로즌솔을 고소했고 2300만 달러 피해보상 소송에서 이겼다. 하지만 로즌솔이 파산하면서 1977년에 600만 달러를 받는 것으로 합의했다. 네 번째 남편인 배리 캄든[* Barry Comden. 1935 - 2009. 캄든은 이후 재혼하지 않았다.]은 데이가 거주하던 카멜 밸리의 유명 레스토랑 주인이었다. 하지만 캄든은 데이가 남편보다 개를 중요시 한다며 이혼한다. 두 번째 남편 와이들러와 네 번째 남편 캄든은 의견차로 헤어졌고 육체 폭력이 없었으며 결혼 기간이 비슷하다는 유사점이 있다. 와이들러와는 이혼 이후 친구로 지냈지만 캄든은 데이가 언급하길 싫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